프로그램
한국단편경쟁

Korean Shorts Competition

올해 춘천영화제의 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선 총 15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1,075편의 출품작 중 예심을 거쳐 선발된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독특한 서사적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실험영화의 톤이 강했던 <샐리>나 영화적 장치를 잘 사용했던 <유아용 욕조> <셋둘하나> 등이 좋은 예가 될 듯하며, <명희>나 <아무 잘못 없는>은 단편영화로선 만만치 않은 러닝 타임 안에서 장편의 극적 구조를 담아내고 있었다. 장르적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함진아비>는 전통 소재를 바탕으로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마이디어>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로, 장애인의 소통에 대한 문제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관 값>은 장르 영화의 거친 매력이 돋보였다. <토끼 탈을 쓴 여자>는 로맨스와 가벼운 미스터리를 결합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적 공기’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작품으로는 <안녕의 세계> <도축> <디-데이, 프라이데이>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테마 역시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유일한 애니메이션이었던 <나무의 집>과 브이로그 스타일의 <육 년과 여섯 번>은 독특한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샤우트>는 압축적 설정으로 우리 사회에 대한 메타포를 만들어낸다.

나무의 집

The Tree's Home

Korea | 2023 | 12min | Animation | Color | G

숲을 걷던 남자는 나무 여인을 만난다. 둘은 결혼하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나무 여인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 아이를 키워낸다. 2021년에 개봉한 장편 <클라이밍>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담았다면, <나무의 집>은 육아에 대한 여성의 희생을 보여준다. 나무 여인이 몸(나무)을 깎아 온갖 것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강렬한 메타포로 관객에게 던져지며, 그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작품의 테마에 가장 적절한 스타일이다. 한편으로는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메시지’ 강한 작품이다.

마이디어

MYDEAR

Korea | 2023 | 25min | Fiction | Color | G

대학 졸업반 가을은 청각 장애를 지녔다. 우연히 알게 된 AI 어플리케이션 ‘마이디어’는 그 안에 존재하는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눈다. 배리어프리 영화로 제작된 <마이디어>는 근미래(2027년)를 배경으로 한, 일견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2014)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가을은 자막 기능을 통해 캐릭터와 인격적 관계를 맺어가고, 그들 사이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AI 테크놀로지를 소재로 우리 일상 속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비장애인 관객이 간접적으로 장애의 느낌을 상상하게 만든다.

유아용 욕조

Baby Bathtub

Korea | 2023 | 15min | Fiction | Color | 12

1970년 12월 15일. 만화가 해성의 신간 ‘조신지몽’이 출간되었다. 욕실에선 아내 수정이 아기 민호를 유아용 욕조에서 목욕시키고 있다. 그리고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 시간대는 어느새 1990년대를 넘어 2014년에 도달해 있다. 최범석 감독의 <유아용 욕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힌트는 ‘조신지몽’일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 이야기처럼, 이 영화엔 꿈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혼재하며, ‘이야기’라는 것의 이상한 매력을 탐구하고,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를 서사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끝까지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영화.

아무 잘못 없는

Not anyone's fault

Korea | 2023 | 40min | Fiction | Color | G

중학생 도윤은 검토 특기생이다. 동생 지후는 누나의 검도를 흉내 내다가 사고를 일으키고, 누출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엄마는 혼수 상태에 빠진다. 전작들에서도 나타나듯, 박찬우 감독의 테마는 ‘가족’이며, <아무 잘못 없는>은 그 안에서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족 안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각자에겐 역할이 주어진다. 도윤은 그것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한편으론 사고에 대한 원죄 의식과 동생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캐릭터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설정과 묘사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방식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