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인디 시네마

Indie Cinema

인디 시네마 섹션에선 6편의 장편과 3편의 단편이 상영된다. 장편에선 묘한 경향성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가족의 테마다. 정범과 허장 감독이 공동 연출한 <한 채>와 강유가람 감독의 <럭키, 아파트>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얽힌 욕망을 중심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인물들이 겪는 모순적 현실을 드러낸다. <딸에 대하여> 역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에 가족을 이룬다는 것의 의미를 담아낸다. <해야 할 일>은 구조 조정의 문제를 내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모습을 담아낸다. 한편 <그 여름날의 거짓말>은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진실과 거짓과 비밀과 모호함이 뒤엉킨 영화다. ‘인디 단편’에선 춘천영화제가 추천하는 세 편의 단편을 담았다. 이재은 감독과 함께 <성적표의 김민영>(2022)을 연출했던 임지선 감독의 <헨젤 : 두 개의 교복 치마>는 또 하나의 독특한 성장영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가홍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최근 나온 단편 중 가장 따스한 결을 지닌 작품일 것이다. <다리 밑 도영>은 독특한 퍼포먼스를 통해 죽음과 이별의 테마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액터스 체어’의 주인공은 <절해고도>의 박종환 배우다. 이 작품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뿐만 아니라, 그의 연기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

That Summer's Lie

Korea | 2023 | 138min | Fiction | Color | 15

고등학교 1학년인 다영은 여름 방학 숙제로 낸 작문에, 남자친구 병훈과의 추억을 적어낸다. 그것을 읽은 담임 교사는 다소 ‘위험한’ 내용에 다영을 추궁하고, 다영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 손현록 감독의 <그 여름의 거짓말>은 서사의 힘으로 전진한다. 다영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일부는 진실인 듯하고, 어떤 부분은 거짓인 듯하며, 비밀처럼 숨겨져 있는 대목도 있다. 그 여름날에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미스터리 로맨스인 <그 여름날의 거짓말>은 결국 ‘관점의 진실’을 통해 모호하면서도 흥미로운 텍스트가 된다.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Korea | 2023 | 106min | Fiction | Color | G

요양보호사인 엄마와 딸 그린. 그린은 독립하고 싶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다. 동성 연인 레인과 함께 엄마 집에 들어와 살게 되고, 셋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김혜진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퀴어 시네마이며 동시에 노령화 사회의 현실을 담아낸, 독특한 시선의 ‘가족 시네마’이다. 가치관의 차이를 지닌 사람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가족을 이뤄가는 과정을 꼼꼼히 담아내는 이미랑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이 인상적인 영화. 우리 시대에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용히 묻는 작품이다.

럭키, 아파트

Lucky, Apartment

Korea | 2024 | 95min | Fiction | Color | 12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는 ‘영끌’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한다. 하지만 선우가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경제적 분담의 균형은 무너진다. 게다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는 그들의 가정을 더욱 위협한다. 다큐멘터리스트 강유가람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럭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욕망 기제인 ‘아파트’를 소재로, 혐오와 공포의 테마를 다룬 퀴어 시네마다. 사적이면서도 공동의 공간인 아파트 단지에서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는 그들. 하지만 영화는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며 의외의 따스한 결말을 담아낸다.

절해고도

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Korea | 2023 | 110min | Fiction | Color | 12

올해 춘천영화제는 배우와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액터스 체어’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그 첫 주인공으로 <절해고도>의 박종환 배우를 초청했다. 김미영 감독의 2023년 영화 <절해고도>는 한 남자의 오디세이 같은 이야기다. 촉망받는 조각가였지만 이혼 후 딸을 키우며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윤철. 딸 지나는 미술적 재능을 마다 하고 출가하여 불자가 되고, 윤철은 영지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빠진다. 여기서 박종환은 삶에 지친 예술가에서 헌신적인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마치 에픽의 주인공처럼 세월을 담아 보여준다.

한 채

The Berefts

Korea | 2023 | 90min | Fiction | Color | 12

문호에겐 딸 고은이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고은. 문호는 고은을 도경에게 결혼시키려 한다. 아파트 분양을 위한 위장 결혼이다. 분양에 성공하지만, 브로커는 문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정범과 허장 감독이 공동 연출한 <한 채>는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가족’으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에서 로또처럼 여겨지는 분양권을 위해 급조된 가족은 그 목적을 이룬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는 황량해 보이면서도 의외의 온기를 지닌다. 다양한 장르 요소를 품고 있는 드라마.

해야 할 일

Work to Do

Korea | 2023 | 101min | Fiction | Color | 12

인사 팀으로 발령 받은 강준희 대리는 불황을 맞이한 조선소 내에서 구조 조정 일을 맡게 된다. 끝없는 엑셀 작업을 통해 해고자를 솎아내는 일. 여기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이 엮여 있다. 임금 삭감, 순환 보직, 대기 발령 그리고 해고. 박홍준 감독의 <해야 할 일>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 시장에서 벌어지는 차갑고 잔인한 현실의 속내를 격한 감정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결국인 타인의 밥줄을 끊는 일임에도, 그 일을 해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딜레마. 그 안에서 영화는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