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두고 벨 X Leave at Door, Bell X
라이더인 지호(지우)는 쌀국수를 잘못 배달하고, 컴플레인이 들어온 후에 일을 수습하려 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상황. 그의 하루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배우 이주영의 연출작 〈문 앞에 두고 벨 X〉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찾는 영화다. ‘문 앞에 두고 벨 X’라는 고객의 요청에 ‘문’을 찾지 못해 배달 사고가 나게 되는 상황은 청년 세대의 현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행인 건 그의 고된 하루가 나름의 해피엔딩이라는 점이다. 소박한 화법으로 위로가 필요한 자들에게 보내는 연민의 시선.
타인의 삶 Other Life
평범한 회사원 규호(노재원)는 유명 작가 영현(최희진)에게 인터뷰 제안을 받는다. 그런데 영현은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규호의 절친 중 하나인 민주가 “인생에서 제일 증오하는 사람이 규호”라고 했다는 것. 규호는 큰 충격을 받는다. 노도현 감독의 〈타인의 삶〉은 인간관계에 대한 영화다.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 앞에서, 한쪽은 묻고 한쪽은 답해야 하는 일방적 소통 속에서, 규호의 친구 관계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문답의 대화’가 밀도 높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영화. 미니멀한 구조 안에 풍성한 의미를 담았다.
보이지 않는 Invisible
재희(박새제)는 남편 주용(기윤)의 고향에 내려가 오래된 모텔을 운영하게 된다. 부부가 오기 전부터 모텔에서 일해 온 외국인 청소부 막심(하이칼)은 재희를 은근히 무시하는 듯하고, 재희는 모텔 생활이 어딘가 불편하다. 홍다예 감독의 〈보이지 않는〉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드러낸다. 남편의 고향에서 이방인이 된 재희와, 외국인 노동자인 막심. 둘 사이의 긴장 관계와, 그들을 감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 〈보이지 않는〉은 차별과 배척의 메커니즘 속에서 개인들의 입장을 면밀히 바라본다.
코끼리 뒷다리 더듬기 Elephant in the Dark
영화 촬영장의 카메라가 부서졌다. 시각장애인 우현(손수현)은 청각장애인 친구 하얀(이영지)과 함께 도망친 범인을 찾아 나선다. 단서는 범인의 얼굴을 확정할 수 없는 CCTV 화면. 과연 우현과 하얀은 카메라를 부순 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장애인 영화 접근권과 배리어프리 영화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배리어프리 영화로 기획된 김남석 감독의 〈코끼리 뒷다리 더듬기〉는 두 장애인이 사건을 추리해가는 스릴러이자,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훌륭한 사례다. 장르 영화 자체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