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시네마

Indie Cinema

Breath

Korea | 2023 | 64min | Documentary | Color | 15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다양한 작업을 해온 윤재호 감독은 〈숨〉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영화는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의 시선으로 이동하며 ‘죽음’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테마를 관념의 세계에서 끌어내려 현실과 일상 속에서 바라보는 작품. “육체를 떠난 이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감독 자신의 사적 경험을 통한 대답.

찌개

Jjigae

Korea | 2022 | 26min | Fiction | Color | G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에이미(한연재)가 고국을 찾아 방문한 곳은 서울의 어느 음식점이다. 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그곳을 지키는 사람은 은선(정선율).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혼자서 식당을 운영한다. 일손을 찾는 은선. 자신을 미국에서 온 셰프라고 소개하며 에이미는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찌개〉는 윤재호 감독의 오랜 관심사인 디아스포라가 멜로드라마 톤으로 표현된 단편이다. 같은 엄마지만, 에이미와 은선이 가지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영화는 그들을 애써 화해시키려 하지 않고, 그 다름이 현실임을 보여준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Juhee from 5 to 7

Korea | 2022 | 76min | Fiction | Color, B&W | 15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바르다의 영화가 암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두 시간을 보여준다면, 장건재 감독의 주희(김주령)는 건강 검진을 하다가 종양을 발견하고 그것이 암이라고 생각한다. 신변 정리를 위해 학교 연구실을 찾은 주희. 이때 연구실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편 호진(문호진)은 초연 준비를 앞두고 분주하다. 중년의 위기를 다룬 연극으로,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장면 때문에 호진은 괴로움을 겪는다. 장건재 감독 특유의, 일상과 판타지가 결합된 듯한 서사가 인상적인 영화. 김주령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THE 자연인

The Nature Man

Korea | 2023 | 125min | Fiction | Color, B&W | 15

유튜버 인공(변재신)은 귀신 전문 채널을 운영 중이다. 제보를 받은 그는 친구 병진(정용훈)과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신윤섭)을 만난다. 그는 귀신이 출몰하는 장소를 알려주기도 하고 자신이 빙의되기도 하는데, 점점 미심쩍은 행동을 보여준다. 불안에 사로잡히는 인공. 이때 자연인의 후배인 란희(이란희)가 찾아오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노영석 감독이 연출과 각본은 물론 제작과 촬영과 조명과 음악과 미술과 동시녹음과 의상과 편집과 컴퓨터그래픽과 사운드 믹싱과 디지털 색보정까지 맡은 영화. 관객과 ‘밀당’을 하는 듯한 서사의 재미를 준다.

괴인

A Wild Roomer

Korea | 2022 | 136min | Fiction | Color | 12

제목만 들으면 크리처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 영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정홍 감독의 〈괴인〉은 매우 일상적인 영화다. 목수인 기홍(박기홍), 같은 집에 사는 임대인 정환(안주민)과 현정(김전길) 부부, 우연히 만난 보호종료아동 하나(이기쁨). 이외에도 적잖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괴인〉은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인물들의 ‘관계’가 서사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여기서 캐릭터들은 묘한 방식으로 충돌하고, 그 관계에서 텐션이 만들어지면서 〈괴인〉만의 아우라가 형성된다. 낯선 배우들의 생경한 톤도 〈괴인〉의 ‘다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

그녀의 취미생활

Her Hobby

Korea | 2023 | 118min | Fiction | Color | 15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여성 정인(정이서). 그의 집 주변에 이사 온,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도시 여성 혜정(김혜나).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며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서미애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그녀의 취미생활〉은 〈델마와 루이스〉(1991)를 연상시키는 워맨스 무비이다. 폭력적인 남성성과 폐쇄적인 분위기가 장악하고 있는 마을. 그곳에 이방인처럼 살고 있는 정인과 혜정이 스스로를 지키고 복수하는 이야기는 긴장감과 함께 통쾌함을 준다. 정이서와 김혜나, 두 배우의 어울림이 좋다.

사랑의 고고학

Archaeology of love

Korea | 2022 | 163min | Fiction | Color | 15

〈누에치던 방〉(2016)에 이어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완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전편이 여러 인물들 사이의 다중 시점으로 전개된다면, 〈사랑의 고고학〉은 주인공 영실(옥자연)과 인식(기윤) 중심으로 ‘사랑’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고고학자처럼 탐구해간다. 그것은 분명 설레고 아름다운 상태겠지만, 때론 집착으로, 때론 가스라이팅으로, 때론 짜증과 잔소리로 드러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인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감정의 앙금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63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을 서사의 디테일로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

양치기

A Good Boy

Korea | 2022 | 107min | Fiction | Color | 12

수현(손수현)은 6개월 뒤 결혼을 앞둔, 4년 차 초등학교 교사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며 아이들에게 애정이 많다. 수현의 반 학생 요한(오한결)은 가정 폭력에 고통받는 아이다. 요한은 다정한 담임 선생님 수현을 엄마처럼 여기고 기대려 하지만, 그 정도가 과한 탓에 수현은 밀어낸다. 실망한 요한은 수현이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 한마디는 수현의 삶을 무너트린다. 영화 〈양치기〉는 ‘거짓말’이라는 행위가 인간의 일상과 내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을 면밀히 담아내는 영화로, 그 과정을 미세하게 표현하는 손수현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영생인

Immortal

Korea | 2022 | 79min | Fiction | Color | 12

예진(강서하)은 20대의 외모를 지녔지만 실제 나이는 70대 중반이다. 원폭 피해를 당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후유증으로 ‘늙지 않는 병’을 앓고 있으며, 예진과 같은 피해자들은 ‘영생인’으로 불리며 사회적 차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예진은 모델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려 하고, 일본의 ‘메이지TV’는 예진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영생인〉의 가장 큰 미덕은 ‘뻔뻔함’이다. 담대한 거짓말을 끝까지 거침없이 밀어 부치며 서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묘한 울림과 쾌감을 준다.

잔고: 분노의 적자

Jango: Uncharged

Korea | 2022 | 108min | Fiction | Color, B&W | 12

위험에 빠진 동생 잔디(정수진)를 구하러 떠나는 잔고(정광우). 자비 없는 자린고비 현상금 사냥꾼 닥터 솔트(서현민)가 그를 돕는다. 그들의 목표는 악랄한 할리우드 사업가 레오나르도 빚갚으리오(손이용). 과연 분노에 찬 잔고는 동생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잔고는 적자를 면할 수 있을까? 2014년 〈숫호구〉 이후 벌써 다섯 번째 장편을 내놓은 백승기 감독은 자타 공인 한국을 대표하는 B 무비 감독이며 〈잔고: 분노의 적자〉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토대로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거침없는 영화.

컨버세이션

The Conversation

Korea | 2021 | 120min | Fiction | Color | 12

영화가 시작되면 함께 프랑스 유학을 했던 세 여자의 대화가 시작되고, 이후 영화는 시공간의 연속성과 무관하게 세 남자와 세 여자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대화의 조합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가 서서히 떠오르고, 무관한 것 같았던 장면들 사이에 인과성이 만들어지며, 결국은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낯선 방식의 작품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이러한 파편적 대화들로 이뤄진 건 아닐까? 대화라는 행위를 통해 삶과 세상을 재구성하는 실험성과 통찰력의 영화.